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설득 vs 주장

살며 생각하며

송면규 | 기사입력 2023/06/03 [08:14]

설득 vs 주장

살며 생각하며

송면규 | 입력 : 2023/06/03 [08:14]

설득은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으로 표기하고 있고 주장은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세게 내세움"을 의미한다.

어떤 철학자는 주장하고 있다. 부처는 "설득의 달인"이고 예수는 "주장의 달인"이라고. 그렇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대체 무엇인지 한번 들어 보기로 한다.

우리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또는 가풍있는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기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신경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반면에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설득하는 데 사용하기 보다 주장하기에 바쁜 것 같다. 이것이 "상대방을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다"는 증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사당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방끈이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그들은 설득보다 주장이 강하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 이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많이 헷갈린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석가는 왕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왕궁에서 규범있게 공부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어법에서 경청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곁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상대방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을 표하면서 살짝 자기 의결을 피력한다.

반면에 예수는 목수 아들로 태어나서 가난하게 성장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가 산상수훈을 비롯해서 이곳저곳을 방문하면서 대중을 향해 사용하는 화법을 보면 거의 대부분 "나를 따르라~"식인 것 같다. 그래서 철학자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불경을 읽다보면 부처의 말씀은 설득을 전제하고 있고 성경은 예수의 주장을 중심으로 기록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을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로 구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사이비 종교 교주들을 보면 자기 만의 논리를 만들어 주장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논리적 공박에 내몰리면 설득하기 보다 "너는 여기서 빠져라" 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것은 상대방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증거 다름 아니다. 마치 상대방과 언쟁하다 논리에서 달리면 갑자기 삿대질하면서 화를 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다.

설득과 주장이 꼭 학력과 비례한다고 할수는 없다고 본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배움이 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설득은 경청을 전제한다"고 한다. 따라서

  "강한 내 주장 보다 경청하는 습관이 보다 효과적일 것 같다" 생각하면서 6월에 첫번째 맞이하는 화창한 주말 아침을 열면서 일자산을 향하고 있다.

<살며 생락하며> 글을 쓰고, 전공서적을 집필하면서 색소폰 연주를 취미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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