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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왜 망했을까
'살며 생각하며'
 
송면규 기사입력  2019/10/2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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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빠르게 깊어 가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도가 나이에 견준다고 하지만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탄핵 정국'을 등에 업고 등장한 정권이 벌써 절반을 지났으니 말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혔는데,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려 2개월이 넘도록 소위 '조국 사태'로 수 많은 국민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내 몬 것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나라인가? 하는 웃픈 얘기마져 회자되고 있습니다. 왜, 국민들이 휴일과 주말을 반납하고 광장으로 나와야 했는지 많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매년 일본과 관계되는 날이 되면 여지없이 일본을 향해 울분을 통하며 삿대질을 합니다. 하지만 왜,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했는지에 대한반성에는 많이 인색한 것 같습니다.    

 

해서, 본고에서는 '왜, 대한제국이 망했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선의 멸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고종과 왕비 민비의 외교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난세를 돌파할 능력이 없으면 줄이라도 잘 서야 생존할 수 있는 게 '외교 및 동맹의 기본원칙'인데 그러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종과 민비는 세계사의 패권 세력이 아닌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과 집요하게 동맹을 맺으려고 시도하다가 대세를 그르친 것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외교 부분에서 국왕 고종은 일종의 허수아비였고, 왕비인 민비가 1884년 중반부터 대외 문제를 좌우하다시피 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 미우라 공사는 '민비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재능을 갖춘 호걸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면서 '사실상의 조선 국왕은 민비'라고 그의 회고록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열강과의 외교 관계는 고종이 나서서 추진했지만 실상은 민비의 의중이 조선 정부를 대표하는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민비와 대원군의 갈등을 외세는 이용했으며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하자 민비는 죽임을 당합니다.

 

한동안 핫한 이슈의 중심에 서 있던 이영훈 박사는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오랫동안 닫힌 가운데 전제 정치의 폭압을 받아 대다수 백성이 노예근성에 물들고, 정신문화가 타락하여 거짓말하는 악습이 횡행하고, 관리는 오로지 임금에 순종하는 것만이 충성인 줄 아는데, 임금이 비겁하고 어리석어서 나라가 망했다"고 그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서 주장합니다.

 

또한 역사학자 최남선은 '우리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 통곡했다고 합니다. 즉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알지 못하여 나라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왕조를 망친 주범을 꼽자면 누가 뭐래도 고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왕조를 자신의 가업으로 간주한 어리석고 탐욕스런 임금이었으며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어 민비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음에도 제대로 된 정세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러시아 공관에 숨어드는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고종이 아관파천한 그 길을 '고종의 길'로 기념하겠다며 한바탕 쇼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고종이 일본에 왕조를 팔아넘긴 덕분에 그의 일족은 일본 황실에 왕공족 신분으로 편입되어 호의호식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종묘사직의 제사를 1945년까지 행할 수 있는 일본의 혜택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백성은 망국노의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을사오적 중 첫 번째로 꼽고 있는 이완용은 매국행위로 이름을 더럽힌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을사조약의 책임을 온통 이완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사람은 바로 고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상적인 외교 절차를 무시하고 고종에게 조약체결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항할 사람은 바로 국왕인 고종인데 그는 몸이 아프다는 걸 핑게로 뒤로 숨었으나 내각대신들이 끝내 반대하자 마침내 이토가 고종과 담판을 시도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마침내 '조약체결'의 어명을 내립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왕이 국가의 안위는 내팽개쳐 놓고 자기만 살겠다고 일관파천, 미관파천, 아관파천, 영관파천을 시도할 수 있는지이해가 안됩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권력자)였습니다.

 

얼마나 통치능력이 한심했으면 일본 수상 이토 히로부미가 1895년 주일 영국 공사 어니스트 샤토우와의 대담에서 '조선의 독립은 현실성이 없고, 조선은 주변의 가장 강력한 국가에 병합하든가 보호 아래 두어야 한다'고 했을까 싶습니다.

 

정리하면, 조선의 망국 암주는 바로 고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개명군주로 둔갑시켜 그가 개혁을 열심히 추진하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좌절됐다는 식의 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미사여구'는 역사를 후퇴시킨다는 교훈을 줍니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백성을 지옥의 세계로 몰아넣고 몰아넣은 놈들만 탓하는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 정부 집권세력은 조선이 망하는 과정에서 특히 국가 지도자의 무능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지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인은 서로 대등한 프랑스, 독일 관계로 보는 반면, 일본인은 격차가 심한 영국과 아일랜드 관계로 본다"는 흥미 있는 조사가 있다는 걸 첨언합니다.

<살며 생락하며> 글을 쓰고, 전공서적을집필하면서 색소폰 연주를 취미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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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21 [07:25]  최종편집: ⓒ 코리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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