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경청의 리더십

"살며 생각하며"

송면규 | 기사입력 2022/07/06 [07:45]

경청의 리더십

"살며 생각하며"

송면규 | 입력 : 2022/07/06 [07:45]

지난 7월 1일 전국 각지에서 주민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민선 8기 지방정부가 출범했다. 임기를 시작하는 리더들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며 함께 주민들은 경청의 리더십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공동체의 리더는 주민들의 쓴소리와 반대 진영의 비판까지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청하는 리더십은 조직의 결속력을 더욱 크게 고양시킨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사람은 두 명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리더가 된다고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리더를 "조직이나 단체에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 으로 표기하고 있다.

경청의 리더십으로 특정해 검색을 해 보면 "구성원의 의견을 마음으로 경청하고, 권한과 기회를 제공해 자발적인 몰입을 촉진하는 리더십"으로 설명하고 있다.

필자가 오래 전 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졸업식에서 기성회장 자격으로 졸업생들에게 축사를 하면서 강조했던 "서번트 리더십"이 "경청의 리더십"과 많이 오버랩 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공자의 "이청득심"을 끌어들이면서까지 "경청의 리더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음은 경청의 필요성, 중요함 다름 아니다.

사람에게 귀가 두 개 달려있음은 말하기보다 듣는 걸 두 배 하라는 의미라고 선현들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귀는 한 개, 입이 두개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완장찬 사람들과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괴현상 다름 아니다. 오죽했으면 "입을 봉하면 배가 고파 죽는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해서 죽는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싶다.

경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웅변에 대한 강한 욕심이 억제되어야 하고, '쓴소리'보다 '단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욕망도 통제되어야 한다.

리어왕은 경청을 소홀히 한 결과 파멸의 길로 들어섰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경청의 리더십을 소홀히 해서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는 걸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청하는 최고의 리더는 누구일까? 모세는 신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히브리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었고, 칭키즈칸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또 세종대왕은 장영실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경청의 리더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리더십 아닐까 싶다.

필자의 지인 중 한 분이 이번에 서울의 모 구청장에 취임했다. 조금 특이한 점은 많은 사람이 그를 가리켜 "겸손한 그리고 경청을 실천하는 리더"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경청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강하게 흡입하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특히 선출직에게 바람직한 현상으로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공자는 "불혹이 넘은 사람한테 단점을 지적하면 멀어지는 지름길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습관이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경청이 체화된 그를 우호적 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되게 경청을 실천한 분을 꼽는다면 아마 법정 스님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상대방이 말할 때 "화자의 눈을 쳐다보면서 몰입하듯 경청하셨다"고 많은 사람이 회상하고 있다.

"경청을 실천하는 리더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건 역사의 교훈이다. 경청을 기반으로 구정을 펼쳤을 때 4년 후 구민들로부터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지 많이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     ©송면규

 

<살며 생락하며> 글을 쓰고, 전공서적을 집필하면서 색소폰 연주를 취미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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